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재명/논란 및 사건사고 (문단 편집) === 대동법 발언 === 최근에는 조선이 대동법을 시행하던 시기에 중국과 일본이 망해갔다는 포스팅을 트위터에 올려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. 조선이 대동법을 고안한 건 17세기 초 광해군 때였지만 18세기 숙종 때가 돼서야 북도와 제주도를 제외한 지역에 정착됐는데, 같은 시기의 일본과 중국은 조선보다도 더 크게 국력이 신장됐다. 일본은 [[도요토미 히데요시]] 사후, [[도쿠가와 이에야스]] 주도의 동군이 [[이시다 미츠나리]] 등을 중심으로 한 서군을 [[세키가하라 전투]]에서 대파한 뒤, 동군의 지도자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자신의 본거지인 [[에도]]에 막부를 세우고 전 일본을 평정했다. 정국이 안정됨에 따라 농업 생산량이 늘어났고, 이에 따른 인구 증가와 상공업 발달, 이와미 은광에서 채광한 은광석을 조선에서 전래된 [[연은분리법]]으로 제련하여 일본의 교역량은 크게 늘어났다. 한편으로는 나가사키의 [[데지마]]를 통해 네덜란드와 교역하면서 유럽의 문물을 도입, [[난학]]을 발전시킨 게 이 시절의 일본이었다. 중국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정도로 크게 변화했는데, 청나라가 산해관을 넘어 북경에 입성한 뒤, [[강건성세]]를 구가하던, 중국 역사상 현대 중국을 제외한 최전성기였다. 참고로 청나라의 역대 황제들은 보통 황제들조차 명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황제들 수준으로 근면하고 성실하며 유능했다고 국립대학 교수들까지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가르칠 정도로 일에 매달렸던 자들이다. 특히나 그 정점에 있던 [[강희제]][* 별명이 '''[[천고일제]]'''다. '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황제'라는 뜻으로 역대 중국, 아니 세계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문무겸전의 끝판왕이었다.]와 [[옹정제]][* 자신의 아버지인 강희제보다 더 지독했던 워커홀릭 황제. 40대 초반의 나이에 즉위해서 하루에 겨우 너댓 시간 정도만 자고 나머지 시간에는 정무 수행에 매달릴 정도로 격무를 한 탓에 즉위한 지 겨우 10여 년만인 50대 초반에 사망했던, '''세계사에서 손꼽히는 내정의 끝판왕.''' 그가 남긴 말 중 가장 유명한 말이 '''"이 한 몸을 위해 천하를 희생시키지 않으리라."'''였을 정도로 국사에 매진하여 그 짧은 재위기간 동안 개토귀류, 지정은제 등 굵직굵직한 성과들을 냈다.]는...... 그런데도 중국과 일본이 망해갔다는 발언은 명 왕조와 도요토미 정권이라면 모를까 국가 자체를 가리킨 거였다면 역사적 무지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자신의 말에 권위를 부여하려고 억지로 갖다붙인 것에 불과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